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톰 아저씨의 오두막 (문단 편집) == 평가 ==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 시기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톰이 너무 수동적인 인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에 기반해서 소심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엉클 톰이라고 일렀다고 한다. 최근에는 용례가 약간 바뀌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높은 범죄율을 비판하면서 변화를 외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도 엉클 톰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작중에서 톰은 노예 신분으로서 어느 정도 수동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톰은 자신의 신념을 어긋나는 행위를 강요받을 때만큼은 주인에게 저항했다. 정말 수동적이기만 한 인물이었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긴 하겠지만 레글리의 지시를 거역하지 못하고 그대로 농장 감독이 되어 몸만은 편히 지냈을 것이고, 마지막에 그렇게 비참하게 숨을 거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부 각색된 버전에서는 이런 톰의 강인한 묘사가 삭제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수동적인 바보 톰 아저씨라는 측면이 더욱 강조되기도 했다.[* 이런 버전에서는 사악한 농장주 레글리의 행동을 과장되고 우습게 표현하기도 한다. 노예제를 은근히 지지하던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넣은 요소이다.] 스토 부인의 남편이 목사인 탓에 [[기독교]] 사상이 짙게 깔려 있는 소설이기도 한데, 작중에 등장하는 톰의 수난은 나약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톰이 수동적인 인물이라는 비판의 핵심은, 이 작품이 쓰인 19세기 중반과 대규모의 흑인 민권 운동이 벌어진 20세기 중반 사이, 한 세기에 걸친 사회상의 변화와 그로 인한 인종 차별 문제의 사회적 논점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위에 서술된 바와 같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윤리관에 의해 쓰인 작품이고, 기독교 윤리관에서 구원의 핵심은 '견디어 내는 것'이다. 즉, 작중 등장하는 톰 아저씨의 삶은 '수난과 고난, 고통과 공포, 유혹에 결코 굴복하지 않고 견뎌내는 것'이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더 나아가 구원에 이르는 이상적인 기독교 신자상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 이런 것과 비슷한 사례는 헨리 8세의 첫번째 [[왕비]]였던 아라곤의 캐서린인데 아라곤의 캐서린은 6번이나 자식을 가졌지만 메리 1세 외의 자식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결국 1녀만 있는 셈인데 아들을 간절히 원한 헨리 8세는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 그런데 헨리 8세는 캐서린과 무려 7년이나 지리한 공방을 이어갔는데 이 역시도 캐서린의 관점에서는 [[카톨릭]]적 관념이 들어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캐서린은 헨리 8세와 결혼하기 전에 그의 형인 아서의 아내였지만 아서가 일찍 죽은 후 시아버지인 헨리 7세의 냉대를 받으며 7년간 힘겹게 살아왔다가 헨리 8세가 즉위한 후 그가 자신에게 반하여 결혼해서 인생이 폈다. 톰처럼 '견디는 것'이 통한 것. 그랬기에 이 때도 '견디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출신지부터가 독실한 가톨릭 국가인 카스타야-아라곤이기도 하다. 물론 캐서린이 버틴 이유에는 이것 말고도 개인적으로도 정말 고생 끝에 왕비가 되었는데 쫓겨나기 싫은 것이나 앤 불린 견제, 이혼하면 [[사생아]]로 격하될 메리 1세 문제 등도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쓰인 시기에서 한 세기 이상이 흐르는 동안 노예제가 폐지되고, 인권과 인종 간 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생겨나고, 두 번의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 등 사회 전반이 크게 변화하면서 1960년대의 흑인 민권 운동은 1850년대의 노예제 폐지 운동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중반의 흑인들은 '왜 우리는 구원받기를 기다려야만 하느냐'고 외치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흑인 민권 운동]], [[마틴 루터 킹]] 문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노예제의 폐지나 명목상의 시민권을 넘어 사회 전반적으로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는 사회적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게 된 것이며, [[흑표당]]이나 [[말콤 X]]와 같은 강경한 입장을 보여준 세력들 역시 등장하게 된 것. 즉, 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톰 아저씨는 동료 흑인들과 손잡고 자신들을 노예의 처지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싸우기보다는 박해와 고난을 강인하게 견뎌내면서 조지 셸비가 자신을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기를 '기다리는' 인물이고, 백인과 동등한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항상 싸우는 인물이 아니라 노예의 신세를 견뎌내면서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강요받을 때만 저항하는 인물이기에 수동적인 인물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만약 해리엇 비처 스토가 1850년대에 '동료 노예들을 이끌고 시몬 레글리와 맞서 싸우는 톰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썼다고 가정해 보자. 당시 백인 독자 대다수는 '터무니없다, 지나치게 과격하고 부도덕하다, 충격적이고 반사회적이다'라는 욕설을 퍼부었을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그 책이 '남북전쟁과 노예 해방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할 만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100% 그렇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존 브라운]] 같은 인물이 찬양받았던 이유가 당시 북부의 분위기였기 때문. 하지만 존 브라운은 백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흑인인 톰 아저씨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경우의 반응은 달랐을 가능성도 있고, 무엇보다 존 브라운에 대한 당시의 반응 역시 전적으로 긍정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당장 존 브라운이 일으킨 1856년의 포토와토미 사건으로 인해 노예제 폐지론자들에 대한 미국 국민 전반의 감정이 대단히 나빠져 링컨을 비롯한 주요 노예제 반대파 정치인들이 황급히 존 브라운과의 관계를 부정해야 했다는 사례가 있다. 이 점에서는 존 브라운을 영웅시하는 관점이 본격적으로 대세화된 것은 그가 처형되고 4개월 뒤, [[남북전쟁]]이 발발한 이후부터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즉 '남부인 및 노예제 찬성론자'들이 연방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면서 그 외 대부분의 미국 국민들이 그들을 '쓰러트러야 할 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따라서 그 적과 타협없이 철저히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 존 브라운이 '불의에 맞서 싸우다 죽은 영웅'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는 당연히 1860년대의 상황이므로, 1852년 <톰 아저씨의 오두막> 발간을 둘러싼 사회적 반응과 비교하기는 적절치 않다. 말하자면 자유주와 노예주, 노예해방론자들과 노예제 지지자들의 갈등이 한참 고조되어 서로 영향력 다툼을 벌이던 1850년대에는 존 브라운과 같은 과격한 행동주의자는 오히려 '너무 극단적이라서 노예제 폐지론의 입지를 좁게 만든다'는 나쁜 평가까지 받았지만 이 갈등이 최고조에 도달하여 결국 폭발하고 만 1860년대 이후에는 '어차피 싸울 수 밖에 없었다면 그가 옳았다'는 평가가 크게 성장한 것이고, 반면 해리엇 비처 스토같은 온건한 인물은 1850년대의 영향력 다툼에서 노예제 폐지론의 입지를 확장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 고작 10년이지만 이 시간 차이는 작은 것이 아니고, 반대로 해리엇 비처 스토와 톰 아저씨의 한계가 본격적으로 지적되기 시작한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의 급진파를 상징하는 [[말콤 엑스]]와 같은 인물이 괜히 존 브라운을 높게 평가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점을 두고 해리엇 비처 스토를 '다소 온정적일 뿐, 본질적으로 흑인을 열등하게 본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비판한다면 그 비판자는 '작품의 역사성을 무시하고 20세기의 논리를 무리하게 19세기에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19세기의 논리를 20세기에 무리하게 적용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톰 아저씨는 당연히 수동적이고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 구조에 순응적인 인물로 보일 수밖에 없으며, 이를 두고 '작품을 똑바로 안 읽어서 그렇다'고 비판하는 것은 '헤리엇 스토는 인종 차별주의자다' 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억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톰 아저씨' 자체가 미국 문화의 전통에서 형성된 영웅상의 하나로서 남북전쟁과 노예 해방 시기를 넘어 20세기 중반의 흑인 민권 운동 시대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음을 이해해야 한다. 말하자면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백 년 가까운 기간 동안 흑인에 대한 차별은 엄연히 실존했고, 따라서 이에 저항하는 흑인들의 인권 운동 역시 계속 이어져 왔으며, 이런 운동에서 가장 대중적인 모범으로 여겨지던 영웅상이 바로 (흑인 노예 해방 운동의 기폭제가 된 본작의 주인공인) 톰 아저씨였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흑인들 역시 명백하게 백인과 동등한 시민권을 요구하게 되면서 (이전 시대의 영웅상이던) '톰 아저씨' 가 새로운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아니냐는 고민이 시작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오히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 1850년대에 반짝 읽히고 말았던 작품이 아니라 1960년대까지 계속 기억되어 오면서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명작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